우리가 운명이라 불렀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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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우연, 불행, 운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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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수 없는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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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대비하기보다는 대처해야한다
기적, 운명을 믿지만 사실 있어서는 안되는 일따윈 없다
우리는 운명을 너무 쉽게 말한다
인생이 우연한 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운명을 찾는다
책 ‘우리가 운명이라 불렀던 것들의 진실’은 운명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살면서 우리가 숱하게 찾는 행운, 불행, 운명의 민낯을 까발린다. 우리가 찾는 ‘운’과 관련된 것들은 인지적 한계과 확대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세상은 사실에 근거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확률이 0%가 아니라면 모든 일은 일어난다. 개인이 특정 행동을 하던 하지 않던 세상은 별도로 움직이고 개인은 그 결과를 마주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사건 사고는 수 많은 개인과 세상의 법칙이 한데 뭉쳐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 큰 흐름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신적이 무언가를 끌어오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 행위라는 것이다.
운명을 기대하고 또 생각하면 삶에 목표를 잃는다
운명에 너무 심취하면 삶의 방향성을 잃는다. 마치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신적 존재가 삶을 조작한다고 느낄 수 있다. 인간 개인의 행동은 아무 의미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개인의 행동과 별개로 세상이 만들어내고 제시하는 일들이 있다. 그렇다고 개인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삶은 개인이 사는 것이다. 세상은 수 많은 법칙에 의해 돌아가지만, 개인의 삶에 한정해서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의 확률은 개인이 정한다. 100% 모든 것이 성공할 수는 없지만 90%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세팅할 수는 있다. 그렇기에 개인의 삶은 위대하다.
일어나선 안되는 일은 없다
인간 인지의 한계로 우연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운명이나 우연을 직접 만들어낸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상황을 연결지으며 의미를 찾으려 한다. 이게 심해지면 과대망상증이지만,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다. 좋은 꿈과 로또 당첨이 아무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이를 연결지으려 하는 것이 그 사례다.
또한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수용을 하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세상이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인지하고 느끼지 않아도 세상은 굴러간다. 내가 아무런 정보 없이 간 곳이고 더불어 위험함을 느끼지 못했어도, 그곳에 위험지역이라면 충분히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 세상은 개인의 인지와 다르게 자체적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은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인정해야할 건 세상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 삶에 어떠한 사건과 사고를 만나도 그것이 내가 불행해서 겪는 일이 아니라 그저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난 거라 받아들여야 한다. 특정한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그 근원을 찾다보면 자신만 불행해진다. 그 근원을 찾는다해도 발생하는 매커니즘 따위는 없으며, 알고 있다고 대비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느 날 멀쩡한 차량이 고장났고 그래서 중요한 계약을 놓쳤다고 해보자. 차는 언제나 고장날 수 있다. 물론 자주 점검을 해서 고장날 확률을 줄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100% 고장을 방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징크스를 만들고, 차를 바꾸고 하여도 근원적으로 차가 고장난다는 우연한 사건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연을 받아들이기
우연에 대해 대비보다는 대처해야한다
우연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행동은 없다. 우연적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10%의 리스크를 위해 대비하면 그 과정에서 전체 비용이 90% 이상 상승한다. 단 10%를 위해 삶에 90%를 낭비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우연에 대비한다는 것은 이처럼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우연을 대비할 수 없다.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할 수 없을 뿐더러, 예측한다고 대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상상 가능한 그리고 상상 불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발생 가능한 일은 발생할 수 있다. 0%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해 받아들여야 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하기 보다는 대처해야한다.
우연한 사건, 사고는 발생 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최선이다. 물론 유연한 대처를 위해서는 우연을 위한 자리를 미리 만들어놔야 한다. 여유분의 시간과 여유분의 자본 같은 것이다. 삶에 여유분을 두고 우연에 그때 그때 대처한다. 이처럼 대비가 아니라 대처를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우연이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질 것이다.
결국 평균으로 수렴한다
우연에 대해 대처를 잘 하는 사람은 일의 과정을 매우 작게 쪼개서 처리한다. 모든 일은 평균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일의 과정을 작게 쪼개서 처리하며 수시로 체크하고 대처 가능성을 높일 수록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확률이 높다. 우리가 음식점을 한다고 한다면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도 실패할 때가 있다. 그런데 2번, 3번 시행 횟수를 높일 수록 결국 준비에 따른 올바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사필귀정이 이것이다. 우연은 늘 발생할 수 있지만 반복 횟수가 많아지면 우연이 관여할 틈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