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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_음식 예능의 한계를 뛰어넘었나?

흑백요리사에 대한 총평
기존 요리 예능이 가진 한계점을 극복하려한 흑백요리사
심사 과정에서 공정함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사람과 음식을 엮어 음식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하지만 결국 서바이벌이 가진 한계에 부딪혔다

요리는 예능이 될 수 있을까?

평소 요리 예능에 선입견이 있었다

평소 요리 예능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했다. 한국에서 다양한 요리 예능이 나왔지만 대부분 비슷한 결을 따른다. 다양한 셰프들이 나와서 요리를 만들고 대결해 최종 승자를 뽑는다는 식이다. 요리 예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찾아서 볼 정도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 하나의 요리 예능도 본적이 없다.

요리라는 장르가 공정한 평가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요리 예능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평가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맛은 매우 주관적이다. 친구 둘셋만 모여도 같은 음식에 다른 평가를 내리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은 맛있다. 맛있는 음식을 몇개 선택하라면 비슷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음식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꽤나 달라진다. 맛 이상의 무언가는 개인의 주관이 들어간다. 그게 추억일 수도 있고, 음식에 대한 지식일 수도 있고, 단순 선호하는 장르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음식 예능의 ‘대결’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든다.

특별한 요리, 그래서 상상과 공감이 가지 않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일까 싶은 요리들이 흑백요리사에도 많이 등장한다
요리 예능에도 보통 특별한 요리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한식대첩이 좋았다) 평소 먹어보지 못하는 요리나, 아이디어가 잔뜩 가미된 요리가 나온다. 그런 요리들은 만드는 과정과 비주얼을 보아도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이번 흑백요리사에서도 솔직히 무슨 맛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요리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콘텐츠라는 건 이해와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 보여지는 여상 속의 상황이나 주제가 공감이 가야 더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 죄다 특별한 요리들을 만드니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머리에 물음표만 생긴다.

요리 예능은 대부분 서바이벌, 경쟁은 피로하다

고든 램지의 강도 높은 평가가 주를 이루는 요리 예능, 솔직히 요리하고 저런 평가 받으면 울것 같다.
흑백요리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예능은 서바이벌 장르다. 서바이벌 장르는 꽤나 피로감을 유발한다. 끝없는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참여하는 이를 비롯하여 보는 이도 질리게 만든다. 계속되는 경쟁은 사람의 밑바닥을 드러내게 만드는데 그 모습을 보는게 편하지 않다. 특히나 요리의 경우 고든램지가 나온 시리즈에서도 보여지듯 자신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요리의 결과를 보기 전에 이미 피곤해져 버린다.

기존 요리 예능의 한계를 해체하려한 흑백요리사

처음으로 제대로 본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

흑백요리사는 개인적으로 처음으로 제대로 본 요리 예능이다. 짤로만 보는게 아니라 모든 에피소드를 정주행했다. 나처럼 평소 요리 예능을 보지 않는 사람도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공한 시리즈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요리 예능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해소되었고, 그래서 좋은 예능이라고 생각한다.

흑백요리사의 심사는 공정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

안대를 쓰고 요리를 먹는다는 참신한 발상을 말한 사람과 그걸 허가해준 사람 모두 대단하다.
흑백요리사는 심사에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백종원과 안성재라는 요리에 있어 양 극단인 두 사람을 기용했다. 요리가 너무 예술이 치우치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상업성에 치중하는 것도 막고자 한듯했다. 안대를 쓰고 음식을 먹으며 심사하는 것으로 인맥이나 비주얼에 치우치지 않는 심사를 보여주고자 한듯했다. 음식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짜낸다면 생각할법한 최대한의 전략을 다 쓴 것이다.
거기다 심사위원도 일반인, 먹방 인플루언서 등 다양하게 배치함으로써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받을 수 있도록했다. 기존의 요리 예능들이 몇몇 유명한 셰프들의 선택에 좌지우지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파격적인 조치다. 중간 중간 일반 심사위원을 배치하는 모습에서 ‘대중성’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요리와 그 수 만큼 다양한 휴먼 스토리

흑백요리사에는 요리마다 휴먼 스토리를 연결지어 놓았다. 아무래도 요리에만 집중하다보면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흥미를 쉽게 잃게된다. 흑백요리사는 요리를 맛있게 보여주는 것 만큼, 그걸 만드는 사람의 주관이나 역사를 멋있게 보여주는 것에도 신경썼다. 그러다보니 흑백요리사는 무협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만들어지고, 등장했던 인물들도 타 예능이 비해 큰 인기를 얻었다. 만들어지는 짤과 가쉽들은 흑백요리사의 전략이 먹혔다고 볼 수 있다.

계급 전쟁이라는 한국의 수저 개념을 기반한 새로운 경쟁

흑백요리사는 계급전쟁이라는 큰 틀에서 시작했다. 기존 요리 예능은 동등한 입장의 참가자들이 고명한 셰프들에게 평가받는 방식이었다. 흑백요리사도 동일한 구조이지만 여기에 수저를 만들어 백수저 팀과 흑수저 팀을 나눴다. 이를 통해 ‘심사위원-참가자’라는 단순한 구도에서 ‘심사위원-백수저(증명)-흑수저(도전)’이라는 다차원적 구도를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심사위원에게 평가받는 것 외에도 자신의 자리에 맞는 증명과 도전을 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구도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심사구도에 새로운 프레임을 넣어주어 보다 박진감 넘치는 대결이 가능하도록 했다.

흑백요리사도 해결 못한 서바이벌 장르의 한계

시리즈로 이어지는 경쟁구도는 누군가의 희생을 낳는다

흑백요리사가 좋은 요리 예능임은 맞지만 역시나 서바이벌 장르의 한계를 해소하진 못했다. 서바이벌 예능을 많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인간사 모든 경쟁이 그렇듯 경쟁 과정에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흑백요리사도 팀전이라는 명목하에 소수를 희생시켰다. 식재료를 직접 공수하는 룰에서는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않는 사람이 희생을 당했다.
경쟁은 모두에게 100% 공정한 룰을 만들 수 없고 개인에 따라 경쟁의 기준과 변수에서 이득과 손해를 본다. 흑백요리사가 아쉬웠던 점은 그런 경쟁의 룰이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에게 유리했다는 점이다. 이왕 공정함에 신경을 썼으면 경쟁의 룰에 있어서도 좀더 심사숙고를 하여 모두에게 동등한 패널티를 줬으면 좋았겠다란 생각이든다.

서바이벌이기에 보여줄 수 없는 100%

서바이벌 장르는 자신의 100%를 보여주기 힘들다. 수능도 그렇지 않는가. 개인의 실력을 떠나서 단 한번으로 평가 받기에 그날 컨디션이나 기타 다양한 이유로 평소 실력의 반도 못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흑백 요리사도 서바이벌 이었기에 몇몇 사람은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새도 없이 탈락해야 했다. 사람이 많고 촬영 시간도 오래 걸리다보니 빠르게 탈락시키며 인원을 줄여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참가자를 줄여서 개개인이 탈락해도 실력에 따라 올라갈 수 있도록 몇번의 기회를 더 주는게 좋았지 않을까 싶다. 참가자 수가 많다는 게 시리즈 진행에 있어 많은 제한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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