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세계관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웹소설 '21세기 반로환동전'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소설이다. 무협세계관의 규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현대적 배경을 잘 섞어놓았다. 주인공 허풍개는 무협인이다. 일제시대 전후로 태어난 그는 숱한 죽음을 보아왔다. 죽음의 두려움을 잘 알기에 등선을 하여 죽음에서 벗어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등선을 위해서는 내공 수련과 동시에 남을 돕는 공덕을 쌓아야하는데, 주인공은 강박증처럼 훈련과 선업을 쌓아간다. 내공증진과 도교적 수행을 위한 금욕적인 삶과 함께 공덕 쌓기에 열중인 그의 삶은 무척이나 블랙 코미디다.
주인공은 본인의 삶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면서도 죽음을 피하기 위한 등선 준비를 멈추지 않는다. 선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강박에 의한것이라 선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훈련을 통해 강해졌음에도 항상 더 위를 바라보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늘상 불행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삶. 지독하게도 상승을 꿈꾸지만 그것이 족쇄가 된 삶에 행복은 없다. 현대 사회에서 바라본 무협의 정의에 대한 냉소와 함께 자신의 목표와 현실 사이에 끝없이 갈등하는 주인공.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삶을 생각하면 주인공의 이야기가 새삼 와닿는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21세기 반로환동전'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함께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등선을 이루기 위한 훈련에 모든걸 쏟아붓는다. 그래서 주위 사람과 관계를 맺는걸 꺼린다. 무협인이기에 남들보다 수명이 길었던 그는 몇번이나 이름을 바꿨다. 주위 모든걸 버리고 수련에만 몰두하다보니 정작 삶이 공허하다 느낀다. 일상의 삶도 친구도 없으니 더더욱 수련에 몰두한다.
우리의 삶도 주인공 허풍개와 다를바 없다. 주위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목표를 이룬 후 안정적인 상태에서 남을 챙긴다는 생각하에 주변을 버리고 나아간다. 목표를 이루고는 자신에게 되묻는다. 왜 주위에 아무도 없냐고. 과거 흔했던 아버지들의 모습이고, 지금 혼자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다. 행복은 혼자서 만들 수 없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걸 버리고 혼자 남았을 때 그 행복을 누릴 사람이 없다면 무슨 의미겠는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건 옳지 않다
미래는 현재를 쌓아서 만들어진다. 현재를 포기한다는 건 결국 미래 역시 포기하는 것이다. 많이들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한다. 미래의 목표를 위해 달릴 수는 있지만 현재 역시 잃을 수 없는 것들은 꼭 지켜가야한다. 주인공 허풍개는 등선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아래 현재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 관계, 우정, 사랑 등 모든 것을 포기한채 앞을 보고 달린다. 그런 그가 현재의 행복을 알게된건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지금이기에 가능한 행복이 있다. 현재 즐기는 행복이 나중에 더 배가 되지도 같지도 않다. 인간은 과거로 살아간다. '21세기 반로환동전' 속 주인공 허풍개는 과거의 추억이 없다. 있는 추억마저 부정한다. 허풍개의 의지와는 다르게 주위 사람들은 그가 현재 행복하기를 바랐다. 끝없이 현재를 놔버리려는 그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렇게 쌓인 추억들에 허풍개는 삶의 의미를 배워나간다. 현재가 있기에 내일을 기대하게된다는 당연한 사실 말이다.
선은 행함에 있다
선의 의미는 행동에 있다. 생각이 어떻든 간 우리에게 보이는 건 행동이다. 행동이 선하다면 그건 선업이다. '21세기 반로환동전' 주인공이 늘상 고민하는 부분은 자신이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선업을 쌓기위해 선을 행함으로 인해서 선의 순수함이 없다. 자신이 하는 모든 선행이 그저 자신의 수련의 일과라는 사실에 떳떳하지 않은 것이다. 위선도 선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선행은 행동을 뜻한다. 그 생각과 결과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선한 행동을 했다면 그 생각이나 결과와 관계없이 선이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을 구했다고, 구한 사람이 나쁜길로 접어들었다고, 선을 행한 사람의 선이 훼손되지 않는다. 주인공 허풍개가 그토록 고민했던 자신이 '선'인가 하는 부분에서 당당히 '선'이라고 말해도 된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다. 착한 생각만 한다고 선이라 할 수 없다. 나쁜 일을 하였는 데 선한 결과로 돌아온다고 선행이라 할 수 없다. 적어도 인간이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선은 행동에 있다.
우린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21세기 반로환동전에서는 결국 인간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내 몸 하나 움직여 하루를 살아가는 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은 내몸을 움직여 만들어내는 하루다. 하루를 살아가기에 우린 내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루를 충실히 보낸다면 내일 역시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
주인공의 경지가 올라감에 따라 기적도 행하게 되는데, 그 기적은 또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중에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고 기적은 자신의 손에 있음을 천명한다. 자신이 살아온 오늘이 만들어낸 기적인것이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서 마주하게 되는 내일은 모든 것이 기적이다.

미스테리가 주는 근본적인 재미를 잘 살린 웹 소설 _ 괴담호텔 탈출기
어느날 호텔에서 눈을 떠보니 각종 괴담을 마주하게 되었다
웹 소설 ‘괴담호텔 탈출기’는 노벨피아의 작품이다. 22년도에 연재를 시작하여 현재도 연재를 이어가고 있으며 800화가 넘는 분량을 자랑한다. 이 웹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흔히 ‘회.빙.환’이라 불리는 회귀 빙의 환생 3대장과 판타지 무협 대체역사와 같은 메이저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괴담호텔 탈출기’는 독특하게도 미스테리와 성장물 그리고 불교적 세계관이 섞인 작품이다.
현대를 살아가던 다양한 사람들이 호텔 내부에서 눈을 뜨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세상 공간이 아닌 듯한 호텔 속에는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호텔을 탈출하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층마다 존재하는 호텔 방에 들어가 무언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호텔 방은 전전하며 그 속에 기이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세상의 위협을 해결해 나간다. 각 방은 서로 다른 미스테리한 존재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설정도 배경도 시대도 다르다. 주인공 일행은 방을 해결해 나갈 수록 새로운 능력과 도구를 얻게 되고 성장해 나간다.
판타지, 무협이 아닌 미스테리 장르
‘괴담호텔 탈출기’는 메이저 장르가 아닌 것만으로 매력적이다. 최근 다양한 웹소설이 나오고 있지만 죄다 판에 박힌 양판소 소설(양산형 판타지 소설)이 많다. 시장 자체가 산업화 되면서,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비슷한 내용에 살짝의 변주만 주고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신선할지 몰라도 순위권 웹 소설 몇개를 보고 나면 흐름이나 구성이 익숙해지면서 질릴 수 밖에 없다.
양판소 소설에 비해 괴담호텔 탈출기는 꽤나 색다르다. 미스테리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각자의 능력이나 도구들도 우리가 자주 접하는 판타지나 무협에서 보던 것들과 다르다. 설화 속이나 괴담 속에서 나올 법한 능력과 도구들에 가갑다. 독특한 점은 불교적인 세계관을 담았다는 것인데 불교의 교리를 알기 쉽게 풀어 놓아서 읽다보면 어려웠던 불교 개념들이 이해가 되곤 한다.
상황과 세계에 대한 나름의 고찰도 나오는데 그부분도 신선하다.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면서 한번쯤 고민해볼법한 딜레마나 문제들이 얽혀 제시된다. 주인공 일행은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데, 다른 해법에 대해서도 열린결말로 나와 있어서 나만의 해법을 고민해보는 재미도 제공한다. 물론 워낙 꼬인 상황들이 많아서 딱히 이렇다할 정답도 없는 경우가 많다.

괴담호텔 탈출기 _ 미스테리가 주는 흥미를 잘 살린 웹 소설
2024/09/25